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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채식주의자, 한강

1. 인혜

자동차들이 다니는 도로 옆 아파트에 살고 있는 나. 아파트와 도로 사이에는 열 보 정도의 간격으로 일정하게 플라타너스가 줄을 서 뿌리 내리고 있다. 미쿡식으로나 이름이 플라타너스지, 우리나라 이름으로는 버즘나무다. 피부병 버즘처럼 나무껍질이 벗겨져 지어진 이름이다. 심지어 이 나무는 열매도 없고 잎사귀만 엄청 커 한 때 '이 나뭇잎이 상추면 얼마나 좋을까?' 우스운 생각을 했을 정도.

사방으로 일 미터 정도의 흙으로 덮인 이 조그마한 공간에 배정받은 버즘나무. 그 주위에는 칼같이 정렬되어 있는 보도블럭들이 끝없이 길을 펼치고, 한 칸을 내려가면 빨리 지나가는 자동차 바퀴의 무게를 버텨내며, 여름이면 녹을듯이 뜨거워졌다 빨리 식어버리는 거친 아스팔트가 깔려있는 도로. 이런 팍팍한 도시에서 가로수로 살아가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굳이 물어보지않아도 목이 메일 것처럼 퍽퍽하다, 아니 팍팍하다. 팍팍.

그러고보니 도로가에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진 이 가로수나, 치열하게 땀흘린 댓가를 모으고 모아 가까스로 스스로 배정한 이 닭장같은 아파트 503호 안의 나는 뭐가 다른가? 나의 주변 역시 너와 다를바없다. 아파트는 온 벽이 회백색의 페인트칠이 떨어져나가 너의 나무껍질과 흡사하고 내가 아이의 손을 잡고 이 아파트를 나간들 마치 나의 일탈된 삶은 자로 재어 자르려는 듯 숨막힐 정도로 각진 보도블럭. 그 밑에 도로에는 길을 건너려는 아이와 나를 재촉하는 시선의 줄지어선 자동차들.

하지만 나와 다르다. 이 가로수는 .

사시사철 무관심한 표정으로 일 년의 뚜렷한 변화를 내 눈에 각인이라도 새길듯이 굳건히 서 있는 이 가로수. 담배꽁초, 씹다버린 껌, 유리조각들이며 온갖 더러운 침에도 꿈쩍않고, 결연하게 봄이 되면 싹을 튀우고 한 여름에는 커다란 나뭇잎을 만들고 가을이 되면 지고를 반복한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묵묵히 일년을 보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끔 내가 대신 진저리쳐진다.

넌 왜 바보같이.
그렇게 지치도록 성실하게 살았니.

이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인혜가 나로 하여금 진저리치게하는 이 가로수같았다. 그래서 지쳐보이는 새를 자신의 나무에서 쉬게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니 날개 있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이 그녀라는 보금자리에 자리를 잡았겠지. 자고로 날개있는 동물이 다른 나무로 언제든지 포르르.. 날아갈 수 있다는 걸 몰랐니. 그게 동생이라는 나무라도 말이지...

2. 영혜

아버지의 폭력과 이에 대한 가족의 침묵은 영혜 본래의 색을 빼앗고 그녀는 무난한 것, 튀지않는 색, 무표정이라는 보호색만을 남기게된다. 그러다 빨간 피 웅덩이의 자신의 낯선 얼굴을 꿈에서 보고 고기를 안먹을 것을 선언한다.

영혜는 식물이 되길 소망하고 그래서 형부에 의해 꽃이 되어 피었다가 너무 빨리 져버린다.
나무가 되겠다는 그 죽음에 이르는 소원은, 불이 붙으면 불꽃이 되어 금세 사그라질 장작밖에 되지않아 보이지만 그렇게 금방 사라지라더라도, 불의 꽃이라도 되어 삶을 마감하겠다는 영혜.

3.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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