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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기록♡

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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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소 새벽 일곱시마다 출근하시어 근면과 성실을 몸소 보여주시는 아버지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셔서 언니들과 저의 도시락 네- 다섯개를 싸주시던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을 보며 자랐습니다"라는 한 문장을 쓴 적이 있었다. (가족관계 설명이 자소서의 첫문장이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썼던 문장 중 가장 극존칭의 문체였다. 써놓고 나니 부끄럼 많은 문장이었다. 너무 촌스럽고 뻔한 문장이었으나 나에겐 우리 부모님의 진실이 담겨있는 한 문장이었기에 며칠을 괴로워했다.
제품처럼 나를 이력서에 포장해서 내놓아야 한다는게 뭔가 비인간적이란 생각이 0.5%, 이런 촌스러운 문장으로 나의 부모님을 설명할 수 밖에 없다니..라는 내 능력의 한계에 대한 좌절감 0.5%, 과연 이따위 문장으로 도배된 이력서로 이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까란 불안함 99%.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라는 극존칭의 첫문장을 쓴 오바 요조는 어땠을까, 나처럼 저 한 문장을 두고 몇날 며칠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그 부끄럼이란 단어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있을까

2

오바 요조는 3 장의 사진과 3 권의 수기를 작성하여 자신을 돌보아주었던 교바시 스탠드 바의 마담에게 보낸다. 그 마담은 제 3 자인 작가로 추정되는 이에게 그것들을 건네고, 그는 사진 3 장에 대한 느낌을 서문으로 작성하여 이 소설이 시작된다. 첫 번째 사진은 유년시절의 모습으로, '웃고 있는 원숭이(p.10)', 두 번째 사진을 보고는 '하나부터 열까지 꾸민 듯한 느낌이 드는 (p.11)', 세 번째는 '아무런 표정없이, 이마도 평범, 이마의 주름도 평범, 눈썹도 평범, 눈도 평범...<...> 특징이 없어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얼굴(p.11)'이라고 묘사한다.  

그런데 나도 이런 사진, 있다. 유년시절, 사진 찍을 때마다 "웃어, 김치, 치즈"와 같은 단어로 강요된 억지웃음의 '웃고 있는 원숭이'의 나, 내 생에 가장 신경을 썼던 깻잎 앞머리를 한 '하나부터 열까지 꾸민듯한 느낌이 드는' 중학생 시절의 나, 나에게 불합리하다고 느껴지는 세상과 사람에게, 때로는 가까운 친구와 가족에 의해서도 몰래 마상을 입곤하는 '무표정'이라는 어른의 가면을 쓴  나.

그리고 이어지는 세 가지의 수기.

첫 번째 수기에 묘사된 유년시절, 요조는 인간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다. 실용적인 계단, 먹어야 살고 그러기 위해 일해야된다는 것, 식사시간. 부모라는 것. 그런것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이해받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익살'이라는 가면을 쓰게된다. 두 번째 수기에 서술된 학창시절에는 친구에게 조차 음산한 도깨비같은 자신을 감추려 다정함을 '연기'하고 세번째 수기의 어른이 되었을 때 그 가면과 연기는 진짜 요조의 것이 되어버렸다. 나에게는 이 세 번째 수기가 요조의 <죄와 벌> 일본판 버전으로 겹쳐 보였다. 도스토선생의 <죄와 벌>에서는 마르멜라도프가 술을 마시기 위해 자신의 친 딸인 소냐가 몸을 판 돈이 필요하다. 아비로서의 그 수치심은 술집에서 술 한잔 얻어먹을 이야기로 바뀐다. 요조 역시 비슷하다. 자신이 술을 사먹기 위해 그리는 춘화를 사주는 몸집 작은 상인이 요시코를 범하는 상황. 그렇다면 자신을 믿어준 요시코가 그런 일을 당했을 때 가면과 연기를 벗어던지지 못한 요조의 죄인가? 그리고나서 방황하던 요조는 하얀색의 반의어는 빨강이라는 자신의 말처럼 하얀 눈 위에 각혈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수기들을 받게 된 상황을 후기로 추가하여 이 작품이 완성된다. 정신병원에 갇혀 스스로 떠올린 그 단어를 캐치하여 제 3자가 제목으로 정했을 것이다 - 인.간.실.격. 오바 요조가 스스로에게 내리는 벌인가

3

"그 사람의 아버지가 나쁜 거예요."
마담이 무심하게 말했다.
"우리가 알던 요조는 아주 순수하고 눈치 빠르고...... 술만 마시지 않는다면, 아니 마셔도...... 하느님같이 착한 아이였어요."(p.138)

이 마지막 대사는 그의 아버지가 어땠는지 환기시킨다. 그렇다고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한 푼도 주지 않고 내쳤는가? 아니다, "오엔만" 빌려달라는, 분명 을인데 갑 행세하는 호리키와 넙치가 그를 잘 빼먹었다. 오바 요조는 갑질하는 그들을 이상하게 생각할 뿐 그대로 내버려 둔다. 아마도 권위적인 아버지 밑에서 불안함과 공포로 자란 자존감 따위 가마쿠라 해변에 던져버린넣은, '하느님같이 착한 이 아이'는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니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자신을 술과 모르핀으로 파괴시키며 산다. 아버지에게 이 지옥에서 살려달라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해를 바라며 구원의 편지를 보내지만 그 아버지는 넙치를 시켜 가볍게 요조를 정신병원에 넣는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 요조가 정신병원에서 풀려나오게 되는 것을 보며 아버지가 요조를 얼마나 이해하려하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그러나 요조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상실감을 얻는 것으로 보아 요조에게 아버지의 존재의 거대함을 느꼈다.

사실을 알고 난 뒤 저는 점점 더 얼간이가 되었습니다. 아버님이 이젠 안계신다. 내 마음에서 한 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던 그 그립고도 무서운 존재가 이젠 안계시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텅 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제 고뇌의 항아리가 공연히 무거웠던 것은 아버지 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모든 의욕을 상실했습니다. 고뇌할 능력조차도 상실했습니다.' (p.132)

그렇게 아버지의 죽음으로 '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 그는 죽음만을 기다리는 인간실격자가 되어버린다.

4
 
사실 인간인격을 읽으며 계속 연상되는 캐릭터는 영화 조커. 병적인 광대짓을 하지만 한없이 외롭고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갈구하는 한 아이라는 것. 그저 마음이 아픈 한 아이라는 것.

5

비가 오나 눈이오나 새벽예배에 다녀오신 후 일곱 시에 출근하시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따라 같이 예배에 다녀오셔서 도시락을 싸주시던 어머니(당시에 고등학생들은 도시락을 두 개씩 들구 다녔다).  저 한 문장을 쓰면서 나는 나의 소풍날을 떠올렸다. 철없게도 나는 엄마가 싸주는 김밥꽁지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소풍 날이 제일 좋았다. 엄마는 적어도 나보다 두 세시간은 미리 일어나서 김밥 쌀 준비를 하셨을 거고, 소풍 다녀온 내가 놀다 지쳐 일찍 잠자리에 들었을 무렵에는 우리의 빈 도시락 통을 설거지 하셨을 것이다. 나는 정말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랐구나 싶었다. 그런 걸로 보면 난 좋은 부모님 밑에서 호강하며 자랐는데 현재 백수인데 다자이 오사무는 아버지의 사랑은 못받았지만 천재작가가 되었으니 삶은 참 아이러니 한 것이 아닌가?

 

ㅡ무려 일주일넘게 이 글에 매달렸다. 인간실격에서 쓸 이야기가 많았기도 한데 하나로 뭉쳐지지않아 엄청 애먹었다.. 사실 죄와 벌 반의어 이야기에 대해 더 써보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휴 당분간 이 책은 좀 멀리하고 싶다. 벚꽃이 만개하는 계절이다. 2020. 3. 22.금방 떨어질 벚꽃잎들이 두 번째 수기의 첫 부분처럼 중랑천에 떨어지기 전에 실컷 꽃 구경하며 오바 요조의 상실감을 날려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