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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2018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이후 단숨에 수많은 독자와 문단의 관심을 한몸에 받으며 센세이션을 일으킨 장류진 작가의 첫번째 소설집. 8편의 소설이 수록되었으며, 주로 이삼십대 젊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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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생이 온다>에서 설명하는 그들의 시크한 성격이 돋보이는 주인공들의 단편이야기
책 표지에 나오는, 아마도 판교 신도시의 회사 밀집 동네에 위치한 육교의 '계단'. 내가 살아가는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능력과 내 연봉에 해당하는 위치는 저 계단 밑 어느 곳쯤이라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런 자신의 위치를 한탄하거나 하소연하지 않는다. 깔끔하게 더 높은 곳을 향해 전진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한심해하기도 하고(잘살겠습니다), 일은 일이고 소확행은 소확행이라는 초간단한 명제를 지키며(일의 기쁨과 슬픔), 때로는 회사에서는 자신이 을이었다가 새로 산 아파트에 청소부를 고용하면서 갑과 을의 스위치 상황(도움의 손길)에 서기도 하고, 피디라는 자아실현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수술비를 위해 선택한 돈벌이로서의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잊고 있었던 탐페라 공항의 할아버지에게 큰 위로를 받기도 하는 이 주인공들은 이름은 다르지만 다 한 명으로 보인다.
<잘살겠습니다>
내용은 역시나 알라딘에 설명이 잘 되어 있다. 저 위에 주소를 클릭..
주인공 '나'는 빛나 언니와 3의 거리를 두려 한다. 더 멀면 더 좋다. 빛나 언니는 '나'와 같은 대학을 나와 같은 회사에 입사해 같은 경영지원팀으로 배정받은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언니가 삼수생이기도 하고 취업준비 1년을 더해서 나이가 3살이나 차이가 나서 그만큼 기회비용으로 따지면 자기의 능력보다 더 밑이라고 생각한다. 언니와 마지막으로 나눈 (아마도 카톡)대화창은 3년전, 결혼식 사흘전에 만나게 된 사람이 빛나언니이다.
늘 3이라는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와 같은 경영지원팀으로 배정받았을 때 빛나 언니와의 자리는 옆 두칸(p. 16)이며, 이 년후에 자신이 원하는 팀으로 13층으로 올라가게 되면서 빛나 언니가 있는 9층과의 거리는 4가 되게 된다.
이 주인공은 빛나 언니와만 거리를 두는 것은 아니다. 결혼할 구재와의 연봉을 밝히면서 그와의 거리가 1030만원 만큼이라는 것을 느끼고, 결혼식 청첩장을 돌릴지 말지로 사람들과의 거리를 정하는 인물이다.
그에 비해 빛나 언니는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큰 눈에, 긴 머리에 부동산 이중계약사고 같은 문제를 뻥뻥 터뜨리는 인물이다. 드라마라면 당근 계실 백마탄 왕자님은 현실에 존재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주인공 '나'가 더욱 이 언니를 답답해하는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언니가 전체회신이라는 실수를 했을 때 같은 실수를 할 뻔했던 입장으로 그 언니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을 느끼고 이 언니가 가져다준 결혼식 답례떡을 먹으며 잘살기를 바란다.
절대 지각하지 않을 것 같은 '나'가 20분 늦어 아침도 못먹고 자리에 왔을 때 언니의 답례떡은 달고 쫄깃했다. 이 빛나 언니가 비록 무신경하고 눈치가 없을지 모르지만, 감정표현이 솔직한 이런 사람은 우리 삶에서 에피소드를 안겨주는 달콤한 사람이다. 나 역시 머리 굴리고 뒤에서 뒷통수치는 사람보다는 비록 하소연할지언정,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솔직한 사람이 더 좋다.
한가지 더 생각하게 되는 바는, 주인공 '나'는 아마도 흙수저 인것 같다. 누가봐도 빛나언니는 금수저는 아닐지언정 은수저는 되는 중산층 집안의 외동딸이나 막내딸일 것이다. 작품에서는 이런 설정이 아예 없지만, (그래서 더 이런 혈연 지연 따지지 않는 90년대생들같다는 생각이 든다) 삼수생이라는 점, 남양주에서 여의도 두시간 출근이 멀어 집을 구해주려 했다는 점, 이중계약으로 집에 말을 못하고 일주일동안 호텔(!!!) 생활을 했다는 점. '나'라면 아예 삼수도, 취업준비생 1년이라는 시간도, 이중 부동산 계약도,일주일 호텔 생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언니넨 잘 살잖아"라는 대사따윈 없이 깔끔하고 시크하게, 그 언니의 바닐라 라떼 향을 고려해 산 바닐라향 핸드크림처럼, 그 언니가 잘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멋대로 지은 '나'의 이름은 김하나. 하나는 표지의 그 계단을 하나, 하나 올라갈 것이다. 구재보다 더 높은 계단을 선점하기를 나는 바란다.
* 개인적으로 <도움의 손길>과 <탐페라 공항>을 인상적으로 읽었다. 도움의 손길에서는 분명 을이지만 갑인 것 같은 우리 시대의 위대한 아줌마가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결말이 뭔가 시원했다. ㅋㅋ 그리고 <탐페라 공항>을 읽으면서는 주인공이 핀란드 할아버지에게 받은 느낌 그대로 심쿵. 직업으로서 자아실현이 이 시대에 얼마나 난제인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아는 1인으로, 그래서 잊고 살았던 내 꿈들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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