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센델, 와이즈베리/01. 정의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일까?

MyDearmoon 2021. 4. 13. 11:05

정의에 대한 세 가지 접근법

p. 40 "복지의 극대화, 자유의 존중, 미덕의 배양이라는 가치는 서로 불일치 하는 모습을 보였다. 

p.41"이 책은 정의의 세 가지 견해의 장단점을 살펴 본다. 먼저 정의란 복지의 극대화라고 생각하는 주장부터 살펴본다. 시장경제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자연스러운 출발점이다. 오늘날 정치 논쟁의 대부분은 어떻게 하면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는지, 혹은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는지, 또는 경제 성장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우리는 왜 이러한 문제에 그토록 신경을 쓸까? 가장 분명한 답은 개인적인 차원에서나 사회적인 차원에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더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풍요는 우리의 복지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이 견해에 대해 자세히 알려면 공리주의를 살펴보아야 한다. 공리주의는 복지를 그대화해야 하는 이유와 방법, 혹은 (그들의 표현대로라면)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구하는 가장 영향력있는 견해다. 

그다음으로는 정의를 자유와 연관시키는 일련의 이론들을 살펴본다이들 이론의 대부분은 공통적으로 개인의 권리 존중을 강조한다.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 곧 정의라는 생각은 복지 극대화를 강조하는 공리주의 사고만큼이나 오늘날 정치에서 익숙하다. (...) 전 세계적으로도 정의는 보편적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견해가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p.42자유를 근간으로 정의를 규정하는 접근법은 (...)경쟁적인 두 진영 사이에서 일어나는데, 자유방임주의 진영을 이끄는 자들은 자유시장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정의란 성인들의 합의에 따른 자발적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데 달렸다고 믿는다. 공정성 진영은 평등을 옹호하는 이론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규제없는 시장은 공정하지도 자유롭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모든 이에게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공정하게 나눠 주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경제적 불이익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정의가 미덕, 좋은 삶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이론을 살펴본다. 미덕으로 정의를 규정하는 견해는 오늘날 정치에서 문화적 보수주의, 종교적 우파로 간주된다. 도덕을 법으로 규정한다는 생각은 자유 사회시민들이 보기에, 자칫 편협하고 강압적인 정책을 초래할 수 있는 경악할 만한 발상이다. 하지만 정의로운 사회는 무엇이 미덕이며 좋은 삶인가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데올로기 스펙트럼 상의 다양한 정치 운동 및 주장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탈레반뿐만 아니라 노예제 폐지론자와 마틴 루서 킹 목사도 도덕적, 종교적 이상으로부터 자신의 정의에 대한 시각을 정립했다. 

사례1. 폭주하는 전차/사례2. 아프카니스탄의 염소 목동

도덕적 딜레마

 나에게 정의란 비둘기에게 과자 부스러기 던져주듯, 슈퍼맨같은 히어로(사람)가 약자(비둘기)에게 자비심있는 마음으로 베푸는 것(과자 부스러기)이 정의지 라고 생각했던 1인이다. 정의는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한테 내키면 도와주는 동정을 멋지게 포장한 말 아니야? 라고 생각했던 나의 무지함에 반성한다.

개인에 따라 정의에 대해 복지, 자유, 미덕의 퍼센테이지가 다양한 만큼 견해차도 클 터.  이것들이 충돌하는 사례들을 들어 도덕적 딜레마에 우리를 끌고 간다. 그리고 거기서 도덕적 추론이 가능한지 조곤조곤 얘기해주는 마이클 센델,

역쉬. 하바드! 선생님은 다르긴 다르다. 

p.52 도덕에 호소해 상대를 설득할 수는 없으며, 정의와 권리에 대해 공적인 토론을 벌이는 것은 독단적인 주장의 공세일 뿐, 마구잡이 이념 싸움과 다를 바 없다. 최악으로 치달을 때는 우리의 정치가 그런 상황이 된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어느 한쪽의 주장에 마음이 바뀌기도 한다. [이 부분은 책을 함께 읽고 독서토론할 때의 내 마음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정의와 부당함, 평등과 불평등, 개인의 권리와 공동선을 둘러싼 주장들이 경쟁하는 상황을 어떻게 이성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이 책은 그러한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53.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어려운 도덕적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우리 내면에서 어떻게 도덕적 사유가 자연스레 나타나는지 살펴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우리는 흔히 옳은 행위에 대한 견해나 확신('전차를 측선 철로 쪽으로 틀어라')에서 시작한다. 그러고는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를 생각하며 근거가 되는 원칙('한 명을 희생시키더라도 여러 명의 목숨을 구하는 게 낫다')을 찾는다. 그 다음 그 원칙에 반하는 상황('가능한 한 여러 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 늘 옳을 줄 알았는데 , 남자를 다리 아래로 미는 행위[혹은 무장하지 않은 염소 목동들을 죽이는 행위]는 잘못인 것 같다')을 맞닥뜨리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혼동되는 상황을 생각하고 이를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것이 바로 철학으로 가는 기폭제다. 

이러한 긴장에 직면했을 때, 옳은 행위에 대한 판단을 재고하거나, 애초에 옹호하던 원칙을 재검토할 수도 있다.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면, 자신의 판단과 원칙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판단에 비추어 원칙을 재조정하기도 하고, 원칙에 비추어 판단을 재조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행동의 세계에서 이성의 영역으로, 다시 이성의 영역에서 행동의 세계로 마음을 돌리는 것이 바로 도덕적 사고의 근간을 형성한다. 

도덕적 주장을 만들어 나가는 이러한 방식, 즉 특정한 상황에서의 판단과 심사숙고를 통해 확정한 원칙 사이를 오가는 변증법의 역사는 꽤오래되었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 철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이처럼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어려움에 봉착한다. 

도덕적 사고가 우리의 판단과 원칙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 것이라면, 

54. 그러한 사고로 정의나 도덕적 진실에 어떻게 다다를 수 있을까? 가령 도덕적 직관과 원칙에 입각해 평생을 헌신하더라도, 그것이 그저 되풀이되는 편견의 타래에 머물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도덕적 사고란 홀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럿이 함께 노력하는 것이라고 답하고자 한다. 따라서 친구, 이웃, 전우, 시민 등의 대화 상대가 필요하다. 때로는 그 대화 상대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 상상 속의 존재일 수도 있다. 자기 자신과 논쟁할 때가 그렇다. 하지만자기 성찰만으로는 정의의 의미나 최선의 삶의 방식을 찾을 수 없다.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소크라테스는 일반 시민을 동굴에 갇힌 포로에 비유한다. 이들이 보는 것은 벽에 드리운 그림자의 움직임, 즉 이들로서는 결코 파악하지 못할 실체의 그림자뿐이다. 상황이 그러하므로 오직 철학자만이 한낮의 빛이 바깥으로 나가 실체를 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태양을 본 철학자만이(그들을 다시 동굴로 돌려보낼 수 있다면) 동굴에 사는 사람들을 지배할 적임자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플라톤은 계급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사람으로 이 사람도 높은 곳의 있는 집 사람이었던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그런거 보면 플라톤도 초인 철인? (능력있는 인간)정치(? 이런 단어였던거 같은데)를 이야기했던 사람으로 일반 시민들을 무지한 그림자 뭉텅이로 봤던 분이다. 

이는 정의의 의미와 좋은 삶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편견과 틀에 박힌 일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라고 플라톤은 지적한다. 그의 지적이 옳기는 해도, 내 생각엔 전적으로 옳다고 볼 수는 없다. 동굴의 비유로 어느 정도로만 타당한 것이다. 만약 도덕적 사고가 변증법적인 사유라면(즉 구체적인 상황에서의 판단과 그 판단으르 형성하는 원칙 사이를 왔다갔다하는 것이라면), 비록 불완전하거나 교육으로 다듬어지지 않았을지라도 나름의 견해와 확신이 사고의 기반과 재료로 존재해야 한다. 벽에 비친 그림자에 영향을 받지 않는 철학이란 그저 메마른 이상향일 뿐이다. 

55. 도덕적 사고를 정치에 적용해 공동체의 삶을 어떤 법으로 다스릴지 물을 때는, 도시의 시끌벅적한 참여, 그리고 대중의 마음을 휘저을 주장과 사건이 필요하다. 구제 금융, 가격 폭리, 소득 불평등, 소수 집단 우대 정책, 병역, 동성 결혼을 둘러싼 논쟁은 정치 철학의 문제다. 이 문제들은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까다로운 시민들을 상대로 우리의 도덕적, 정치적 신념을 분명히 하고 정당화하라고 촉구한다. 

이책의 목적은(...) 독자들로 하여금 정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정립하고 비판적으로 검토하도록 만들어, 자신이 무엇을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알도록 하는데 있다

이렇게 자신의 정의에 대한 견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내 생각이 왜 그런 도덕적 추론의 과정을 거쳤는지 생각하고 나면 다른 사람들의 다른 정의에 대한 견해를 나와 다른 생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그런 견해를 갖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러면 정말 다른 견해를 함의하고 수용할 수있도록 하게 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사회라는 집단 속에서 우리가 가장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도움이 되는 정의를 , 이 하바드 교수님은 가르쳐 주려고 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