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기록♡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2022.2.24

MyDearmoon 2021. 2. 24. 15:22

이 책을 붙들기시작한건 한 달전이다. 물론 나의 선택에 의한 픽은 아니다. 

처음처럼 이라는 소주 글씨체가 이 분 거라는 것도 첨 알았다(소주안마심...)

더불어민주당 이름을 지어준 것도 이 분이라고..(유명한 분을 못알아봄)

 

아 분명 가로줄 책인데 옛날 새로줄 책 마냥 겁나 안넘어감.. 이에 대해 내가 이렇게 유명한 분을 모른다는 자책감과 내 지식과 사유 얕음에 탄식하며.. 나도 나름 70년대생인데 왕년에 한문 많이 알았는데.. 한자어 폭격에 이렇게 연약했다니..라는 자괴감에..................................... 괴로워하며 일독을 마쳤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그랬다. 사색. 참새마저 휘어넘는 15척 옥담의 갇혀진 공간에서 무기징역수라는 언제 자유를 얻을지 아무도 모를 시간 속에서 자신을 놓지 않고 다방면의 사색과 가족간에 가질 수 있는 모든 정이 여기에 들어있었다. 가족에 대해서는, 어쩌면 이 분이 편지로 소통을 하였기에 이렇게 이상적인 가족간의 정이 쌓여진게 아닐까 하는 잔인한 생각마저 들었다. 현실가족 케미가 절대 아니었다는...(아버지가 사명당의 역사를 기록하시려 하신다고 했을 때 아버지의 역사관에 대해 써놓는 장면(나름 조심스럽게 ㅋ)은 와 부자지간에 이런 대화가 가능하다고? 하는 생각을..)

 

감옥 창에 날아온 풀씨 하나가 자라는 모습에도 감옥방에서 함께 산다는 곤충친구들에게도 애정을 주는 신영복선생님의 따뜻함과 이런 분을 감옥에 가둬둔 것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가독성이 엄청 딸림에도 불구하고) 한장 한 장 넘기게 되는 그런 책. 

 

물론 꼰대적인 사색도 참 많다. 동생이 결혼할 여자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쓰는 충고하는 편지나.. 아버지의 역사관에 대한 조언, 평가 판단 등등.. 역시 옛날 사람은 옛날 사람의 책이었겠다 싶다가도.. 자신이 감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했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엎어져 있지 않고 자신이 가족의 일원으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충조평판을 필터로 갈고 또 갈아 알맹이의 충조평판을, 자신의 사랑을 담아 편지를 썼음이 느껴진다. 

p. 148 우수, 경칩 넘기면 

고중장구와족제 양춘부래답곤기 : 창고 속에 가지런히 누워 있는 농기구들도 머지 않아 봄이 오면 문 열고 일어서서 들판으로 나갈 것입니다. (...) 겨울을 춥게 사는 사람들 틈새에서 해마다 어머님의 염려로 겨울을 따뜻이 지내는 저는 늘 옆사람에게 죄송하비다. 봄은 내의와 달라서 옆사람도 따뜻이 품어줍니다. 저희들이 봄을 기다리는 까닭은 죄송하지 않고 따뜻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p.149 꿈마저 징역살이

징역살이 10년을 넘으면 꿈에도 교도소의 그 거대한 인력을벗지 못하고 꿈마저 징역사는가 봅니다. 우리는 먼저 꿈에서부터 출소해야 하는 이중의 벽 속에 있는 셈이 됩니다. 겨울밤 단 한명의 거지가 떨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겐 행복한 밤잠의 권리는 없다던 친구의 글귀를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불행이란 그 양의 대부분이 가까운 사람들의 아픔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라 믿습니다. 

p.150. 속눈썹에 무지개 만들며

저는 가끔 햇볕 속에 눈감고 속눈썹에 무수한 무지개를 만들어봄으로써 화창한 5월의 한 조각을 가집니다

 

p. 151 한 송이 팬지꽃

열두시의 나비 날개가 조용히 열려 수평이 되듯이, 팬지꽃이 그 작은 꽃봉지를 열어 벌써 여남은 개째의 꽃을 피워내고 있습니다. 한 줌도 채 못되는 흙 속의 어디에 그처럼 빛나는 꽃의 양식이 들어 있는지.... 흙 한 줌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내가 과연 꽃 한 송이라도 피울 수있는지, 5월의 창가에서 나는 팬지꽃이 부끄럽습니다. 

p. 153 메리 골드

메마른 땅에 살고 있는 제 족속들과는 달리 이 엄청난 가뭄의 세월을 알지 못한 채, 주전자의 물을 앉아서 받아마시는 이 작은 꽃나무는 역시 땅을 잃은 연약함을 숨길 수 없습니다. 과연 지난 6,7일 연휴를 지내고 출역해보니 물 길을 줄 모르고 길어올릴 물도 없는 이 꽃나무는 화분 언저리에 목을 걸치고 삶은 나물이 되어 늘어져 있었습니다. 큰 땅에 뿌리박지 못하고 10센티미터짜리 화분에 생명을 담은 한 포기 풀이 어차피 치러야 할 운명의 귀결인지도 모릅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가 없지도 않았찌만 차라리 장송의의례에 가까운 심정으로 흥건히 물을 뿌려 구석에 치워두었습니다. (ㅡㅡㅡ) 창문턱에서 내려와 쓰레기통 옆의 잊혀진 자리에서 꽃나무는 저 혼자의 힘으로 힘차게 팔을 뻗고 일어서 있었습니다. 단단히  주먹쥔 봉오리가 그 속에 빛나는 꽃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p. 154 저녁에 등불을 켜는 것은

무심한 일상사 하나라도 자못 맑은 정성으로 대한다면 훌륭한 '일'이란 우리의 징심(맑을 징, 맑은 마음) 도처에서 발견되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 저녁에 등불을 켜는 것은 어려울 때 더욱 지혜로워야 한다는 뜻이리라 믿습니다

p. 155 바다로 열린 시냇물처럼

주관은 궁벽하고 객관은 평정한 것이며, 주관은 객관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객관은 주관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각자가 저마다의 삶의 터전에 깊숙히 발목 박고 서서 그 '곳'에 고유한 주관을 더욱 강화해가는 노력이야말로 객관의 지평을 열어주는 것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곳'이, 바다로 열린 시냇물처럼, 전체와 튼튼히 연대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사고의 동굴을 벗어나는 길은 그 삶의 터전을 선택하는 문제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246 사람은 그림처럼 벽에 걸어놓고 바라볼 수 있는 정적 평면이 아니라 관계를 통하여 비로소 발휘되는 가능성의 총체이기에 그렇습니다. 한편이 되어 백지 한 장이라도 맞들어보고 반대편이 되어 헐고 뜯고 싸워보지 않고서 그 사람을 알려고 하는 것은 흡사 냄새를 만지려 하고 바람을 동이려 드는 헛된 노력입니다.

대상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라보는 경우, 이 간격은 그냥 빈 공간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선입관이나 풍문 등 믿을 수 없는 것들로 채워지고, 이것들은 다시 어안 렌즈가 되어 대상을 왜곡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풍문이나 외형, 매스컴 등,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인식은 고의보다는 나을지 모르나 무지보다는 못한 진실과 자아의 상실입니다.

-> 그런데 이런 사람의 관계에 대한 부분은 의문이다. 신영복씨는 감옥의 좁은 방안에서 살 부대끼며 겨울을 서로의 체온으로 나는 사람이라 그런지 서로 부벼봐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안다고 하는데, 그건 감옥이 오히려 감시 당하는 곳으로서 죄로부터의 청정지역이라 그런게 아닐까? 돈을 가지고 튄다던가 사기친다던가 할 수 없는 그런 곳이기에..